(미국 중서부와 북동부에 폭풍이 와서 TV 뉴스에 시끄럽더군요. 매년 있는 기상이변이지만 해가 갈수록 조금씩 심해지는 것 같네요. 지구 온난화 때문이라고 추정하는 전문가도 많다고 합니다. 다음 글은 올해 2월 1일,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에 올렸던 기상이변에 관한 글입니다.)
오늘(2009년 2월 1일) 뉴스를 보니 켄터키주에 Ice Storm이 몰아쳐서 큰 피해를 보고 있다고 합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자연재해로 남동부의 태풍 허리케인, 북동부의 눈폭풍 블리자드, 중서부의 회오리바람 토네이도, 그리고 서부의 지진을 들 수 있는데(안전한 지역이 별로 없죠^^), 북동부 겨울에 엄습하는 Ice Storm도 직접 겪어보면 무시무시합니다.
Ice Storm은 눈비가 내린 다음 기온이 급강하 되면서 얼음 알갱이가 나뭇가지 등에 두껍게 붙으면서 큰 피해를 줍니다. 예컨대 큰 나뭇가지가 얼음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부러지면서 전선이나 전봇대를 치면 전기공급이 끊어지게 되죠. 저도 북동부에 살 때 큰 Ice Storm을 한번 겪었는데 전기도 없고 차도 다닐 수 없게 되니 정말 갑갑하더군요. 백 독이 불여일견! 아래의 동영상을 보시죠.
이번 겨울에 한순구 교수님이 계신 지역에 몰아쳤던 Ice Storm입니다. 한 교수님 가족이 피해를 당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비슷한 엄한 경치는 구경하셨을 것 같습니다. 위험하지만 경치는 좋습니다.^^ 훨씬 남쪽인 켄터키주에서도 강력한 Ice Storm이 발생한 것은 흔히 있는 일은 아닙니다. 지구 온난화 영향도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이 추정하고 있답니다.
다음은 인디애나주 Ice Storm을 경치 위주로 촬영한 동영상입니다. '아베 마리아' 배경음악과 잘 어울리네요.^^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2009년 12월 12일 토요일
[사진] 역사가 숨 쉬는 산책로
[작성자]
안병길晴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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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2:22
요즘 제가 운동 겸 매일 산책한다고 말씀드렸죠. 한 코스만 다니면 지겨워서 몇 코스를 개발해서 적당히 섞어서 다닙니다. 그 중 하나가 팔로알토와 멘로파크를 연결하는 산책로입니다. 일단 분위기를 보시죠. 클릭하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때는 바야흐로 1769년, 스페인은 북부 캘리포니아에 전진 기지를 구축하고자 육로 탐험대를 보냅니다. 러시아보다 먼저 그 지역을 차지하려는 의도로 남자 63명, 말과 나귀 200여 마리로 탐험대를 꾸렸습니다. 그 이전 기록에 따라서 몬테레이를 발견하는 것이 목표였는데, 샌디에고에서 출발한 탐험대가 너무 북쪽으로 갔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몬테레이는 지나쳤고, 꿩 대신 닭인지, 닭 대신 꿩인지는 몰라도, 대신 샌프란시스코 베이를 "발견"했던 것입니다.
제가 "발견"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만, 정확하게는 "서양인의 발견"이겠죠. 이미 인디언들이 살고 있었으니 최초 발견자는 그들이었고, 서양인이 처음 샌프란시스코 베이를 본 것이 1769년 11월이라는 말씀이 되겠습니다. 1769년 11월 6일부터 11일까지 그 탐험대가 사진의 큰 나무들이 있는 바로 그곳에서 캠핑을 했다는 기록이 표지에 적혀 있습니다. 그 원정에서 탐험대가 거목인 캘리포니아 레드우드를 처음 봤고, "큰 나무"를 뜻하는 팔로알토(Palo Alto)로 불렀습니다. 팔로알토라는 지명은 스페인의 캘리포니아 점령을 뜻한다고 봐도 되겠습니다. 인디언들에게는 별로 좋지 않은 역사 기록이겠죠.
그 탐험대는 샌프란시스코 베이가 너무 커서 모두 둘러보지 못하고 샌디에고로 되돌아갔습니다. 몬테레이는 결국 보지 못했죠. 그 사실을 기록한 표지도 산책로에 있습니다.
가을 정취가 괜찮죠? 일주일 전에 찍은 사진입니다. 며칠 전에 비가 많이 와서 지금은 잎이 거의 다 떨어졌습니다. 겨울이 시작된 것이죠. 산책로 중간에 큰 레드우드가 몇 그루 있는 곳이 있는데 그곳에 역사 안내 표지가 있습니다. 사진을 찍었습니다. ^^
때는 바야흐로 1769년, 스페인은 북부 캘리포니아에 전진 기지를 구축하고자 육로 탐험대를 보냅니다. 러시아보다 먼저 그 지역을 차지하려는 의도로 남자 63명, 말과 나귀 200여 마리로 탐험대를 꾸렸습니다. 그 이전 기록에 따라서 몬테레이를 발견하는 것이 목표였는데, 샌디에고에서 출발한 탐험대가 너무 북쪽으로 갔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몬테레이는 지나쳤고, 꿩 대신 닭인지, 닭 대신 꿩인지는 몰라도, 대신 샌프란시스코 베이를 "발견"했던 것입니다.
제가 "발견"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만, 정확하게는 "서양인의 발견"이겠죠. 이미 인디언들이 살고 있었으니 최초 발견자는 그들이었고, 서양인이 처음 샌프란시스코 베이를 본 것이 1769년 11월이라는 말씀이 되겠습니다. 1769년 11월 6일부터 11일까지 그 탐험대가 사진의 큰 나무들이 있는 바로 그곳에서 캠핑을 했다는 기록이 표지에 적혀 있습니다. 그 원정에서 탐험대가 거목인 캘리포니아 레드우드를 처음 봤고, "큰 나무"를 뜻하는 팔로알토(Palo Alto)로 불렀습니다. 팔로알토라는 지명은 스페인의 캘리포니아 점령을 뜻한다고 봐도 되겠습니다. 인디언들에게는 별로 좋지 않은 역사 기록이겠죠.
그 탐험대는 샌프란시스코 베이가 너무 커서 모두 둘러보지 못하고 샌디에고로 되돌아갔습니다. 몬테레이는 결국 보지 못했죠. 그 사실을 기록한 표지도 산책로에 있습니다.
마지막 사진은 산책로 중간에 만나는 오리들입니다.
즐거운 주말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2009년 12월 11일 금요일
[예술] 그리움은 못내 그림이 되고...
[작성자]
안병길晴海
//
오후 10:02
그리움은 못내 그림이 되고...
청량한 가을로 계절이 익어가는 날에
늘 아련함으로만 남아 있던
살아온 날들의 그리움이 못내 그림이 되었습니다.
청솔 숲 가장 큰 나무 곁에 자리 잡은 우리들의 작업공간은
그동안 우리에게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이었다.
봄에 가지마다 새순을 터트리며 오소소 피어난 나뭇잎들은
봄빛 찬란한 연두와 초록의 향연이었고,
가을에는 갈색 낙엽들의 장맛비로 내려 내 가슴 속에 삶의 소중한 이야기를 고여 놓았다.
그 나무는 내 작업 속으로 들어와, 꿈을 영그는 나무, 호수의 물빛을 닮은 나무, 아파도 아프지 않다고 견디게 하는 나무, 사람의 뒷모습을 읽어주게 하는 나무,
덜어내는 기쁨을 알게 해 주는 나무, 아낌없이 피어나는 꽃들이 있는 바다 빛 나무가 되었다.
그 나무의 이미지는 끝없이 변용되면서, 이름 모를 꽃망울을 터트리기도 하고,
가지 사이로 물고기들이 유영하기도 하며, 뭇 새들이 모여 정겹게 노래하기도 하고,
아름다운 인연의 얼굴로 교차하기도 하며,
희미한 달빛에 숨죽인 강릉의 깊고 고요한 정경들을 펼쳐 주기도 하고,
잎새 같은 조개껍데기들도 나뭇가지에 걸려 새와 꽃들과 교감하면서
여전히 살아 있는 생명체로 존재한다.
삶, 추억 그리고 사랑...
이런 말들이 하나씩 별이 되어 간다.
물감으로 컴으로는 도저히 그 느낌을 그리지 못해
도자기 유약들이 1250℃의 고온에서 몸을 사르며 그려낸 투명한 그림이
맑은 향기를 내뿜고, 그 향기에 취해 잊고 있던 자연과 삶에 대한 아련함을 일깨워 주기를....
살아오면서 어느 땐가 들은 것 같은 화사하면서도 소탈한 정겨운 그림의 이야기들이
지친 일상에 온기와 활력을 불어넣어주기를 기대한다.
2009년 가을 작업노트에서...
============================================
제 친구인 현대도예가 염미란 교수의 예쁜 글입니다. 다음 주 15일 화요일까지 서초동 한전플라자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합니다. 다른 도예가들의 작품도 볼 좋은 기회인데 저는 멀리 있어서 참석하지 못합니다. 관심 있는 분은 가셔서 늦가을, 초겨울의 정취를 예술과 함께 하시길 권해 드립니다.
청량한 가을로 계절이 익어가는 날에
늘 아련함으로만 남아 있던
살아온 날들의 그리움이 못내 그림이 되었습니다.
청솔 숲 가장 큰 나무 곁에 자리 잡은 우리들의 작업공간은
그동안 우리에게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이었다.
봄에 가지마다 새순을 터트리며 오소소 피어난 나뭇잎들은
봄빛 찬란한 연두와 초록의 향연이었고,
가을에는 갈색 낙엽들의 장맛비로 내려 내 가슴 속에 삶의 소중한 이야기를 고여 놓았다.
그 나무는 내 작업 속으로 들어와, 꿈을 영그는 나무, 호수의 물빛을 닮은 나무, 아파도 아프지 않다고 견디게 하는 나무, 사람의 뒷모습을 읽어주게 하는 나무,
덜어내는 기쁨을 알게 해 주는 나무, 아낌없이 피어나는 꽃들이 있는 바다 빛 나무가 되었다.
그 나무의 이미지는 끝없이 변용되면서, 이름 모를 꽃망울을 터트리기도 하고,
가지 사이로 물고기들이 유영하기도 하며, 뭇 새들이 모여 정겹게 노래하기도 하고,
아름다운 인연의 얼굴로 교차하기도 하며,
희미한 달빛에 숨죽인 강릉의 깊고 고요한 정경들을 펼쳐 주기도 하고,
잎새 같은 조개껍데기들도 나뭇가지에 걸려 새와 꽃들과 교감하면서
여전히 살아 있는 생명체로 존재한다.
삶, 추억 그리고 사랑...
이런 말들이 하나씩 별이 되어 간다.
물감으로 컴으로는 도저히 그 느낌을 그리지 못해
도자기 유약들이 1250℃의 고온에서 몸을 사르며 그려낸 투명한 그림이
맑은 향기를 내뿜고, 그 향기에 취해 잊고 있던 자연과 삶에 대한 아련함을 일깨워 주기를....
살아오면서 어느 땐가 들은 것 같은 화사하면서도 소탈한 정겨운 그림의 이야기들이
지친 일상에 온기와 활력을 불어넣어주기를 기대한다.
2009년 가을 작업노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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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친구인 현대도예가 염미란 교수의 예쁜 글입니다. 다음 주 15일 화요일까지 서초동 한전플라자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합니다. 다른 도예가들의 작품도 볼 좋은 기회인데 저는 멀리 있어서 참석하지 못합니다. 관심 있는 분은 가셔서 늦가을, 초겨울의 정취를 예술과 함께 하시길 권해 드립니다.
[단상] 서울대 국제지역원 소통 사례
[작성자]
안병길晴海
//
오전 12:33
서울대 국제지역원 전관 금연 토론 (1999년)
[설명] 이 토론은 1999년 서울대 국제지역원 게시판에서 있었던 토론이다. 그 당시 많은 비흡연 학생들이 실내 흡연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학생회는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실내 흡연을 삼가도록 권고하였지만, 여전히 일부 흡연자는 실내에서 담배를 피웠다. 그들에 대한 비판 글이 대학원 게시판에 올라오면서 토론이 시작되었다.
필자는 흡연자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서, 자유주의에서 자유가 서로 부딪힐 때 규범이 생기는 점을 강조하고, 흡연자들이 전관 금연 규범을 다시 바꾸려면 민주적 절차를 밟을 것을 권고하고 있다. 전관 금연은 실외에 파라솔을 비치하여 흡연자 편의를 살피는 설비가 마련되어 예정대로 시행되었다. //
(출처: 1999년 서울대 국제지역원 홈페이지 게시판, 당시 주소 http://gias.snu.ac.kr)
[글 0] 문제 제기
“금연”, 결정된 것 아니었습니까? 얼마 전에 학생회에서 투표했었던 것 같은데... 아직도 휴게실에서 남들 밥 먹는 거 뻔히 보면서, 약간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담배를 꼭 피워야 되겠습니까? 자기가 피우는 담배 연기를 다른 사람이 맡는 거... 애연가들이 생각하기에는 별거 아닐지 모르지만, 금연족들은 왜 왜 담배를 안 피우겠습니까? 몸에 나쁘니까 일부러 애써 안 하는 거죠... 몸에 나쁜 거 이 기회를 빌려 휴게실에서만이라도, 또는 밖에 나가서 피우는 거 귀찮아서라도 좀 줄여보시죠.
담배가 싫어요. 우리 아빠도 가족들 생각해서 끊었는데 그 연기를 내가 학교에 공부하러 와서 맡아야 되겠습니까? 흡연자들은 모르겠지만, “정말 정말 머리 아프게, 피우는 사람의 인격이 순간 의심될 정도로 싫다고요~~!!!”
[글 1] 금연 문제에 대해서 (학생회)
사실 많은 반발이 있어도 실내 금연을 강제하려고 했습니다. 문제는 학생회에서 결정하는 것은 별 구속력이 없더군요. 교수 회의에서 이 결의 사항을 참고, 채택하여 공식적으로 공포해야 효력이 발생한답니다. 어쨌든 흡연자들을 야만인, 에티켓 없는 괴물 취급하지 마시기를 바라면서 공식 견해로 선생님들께 공포하시기를 부탁하겠습니다.
새 건물에는 흡연실이 만들어질 것을 확신하고, 야외에도 아름다운 휴게실이 생길 것을 믿습니다. 어쨌든, 앞으로는 야외에서 흡연하시기를 부탁하는 바입니다. 감사합니다.
[글 2: 필자] 금연 문제
국제지역원(신관 및 구관 모두)을 금연 건물로 하기로 하였습니다. 금연 규정은 국제지역원 옥외에 흡연자 편의를 위하여 파라솔(우천시 고려), 피크닉 테이블, 재떨이 등을 비치하는 시점부터 적용하기로 했습니다.
이 결정에 따라서 조만간 저도 제 연구실에서 담배를 피우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아주 잘 된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건강을 위해서...
[글 3] 화장실에서도 피우지 맙시다.
휴게실에서 못 피우게 하면 화장실에서 피는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하지만, 이것도 불쾌하기는 휴게실 못지않습니다. 오히려 연기 농도는 휴게실보다 훨씬 높지요. 그러니 해악은 더 큽니다. 화장실에서도 피우지 맙시다.
[글 4: 필자] Re: 화장실에서도 피우지 맙시다.
실내 흡연은 어떤 곳에서도 허용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당연히 화장실도 금연구역입니다.
[글 5] 왜 이러죠? (흡연자 시각)
이런 예외없는 규칙 적용은 분명히 어떤 부작용을 가져올 것입니다. 건물 내 흡연공간 설치가 더 중요할 듯싶습니다. 흡연자들께서는 아시겠지만, 수업 중간마다 한 대가 얼마나 피로회복에 좋은지 아실 것입니다. 그런데 쉬는 시간을 이용해서 바깥 파라솔까지 가는 것은 무리가 있을 듯싶습니다. 4개의 화장실 중 하나라도, 3층이 가장 무난할 듯, 흡연 가능구역으로 지정하는 것이 어떨까요... 그리고 안 선생님 방에서 교수님 흡연은 가능하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과연 이런 조치가 어떻게 옮겨질지 의심스럽습니다. 휴게실에서 담배피우는 사람들의 죄책감을 가중시켜 오히려 나가서 담배를 더 피우게 하는 부작용도 생기지 않을까요? 우리 어느 정도 타협합시다. 전관 금연은 지나치게 이상적인 발언입니다. 흡연구역은 별도로 지정되어야 합니다.
[글 6: 필자] Re: 왜 이러죠?
구체적인 사례로 한번 생각해봅시다. 공항에 가면 건물 안에 흡연실이 있습니다. 저는 그 이유를 건물 밖으로 나가서 흡연하기 곤란하기 때문에 그런 흡연 구역을 지정한 것으로 해석합니다. 국제선 출국장에서는 한번 들어가면 밖으로 나오기가 거의 불가능하지 않습니까?
우리 건물은 건물 밖으로 나가는 것이 그렇게 힘들지 않습니다. 교수회의를 할 때, 흡연자 편의를 위해서 환풍시설이 있는 흡연실을 설치하자는 제안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아주 값비싼 최고성능 환풍시설이 아닌 이상, 담배 연기는 새나올 것입니다. 그 이유 때문에 전관 금연으로 의견이 모였습니다. 흡연자인 저도 동의했습니다. 국제지역원은 건물 밖으로 나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 30초도 걸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 방을 한번 생각해봅시다. 저는 지금까지는 금연 방침이 없었기 때문에 마음대로 방안에서 담배를 피웠습니다. 그 담배 연기가 복도로 가끔 새나올 때(방문을 열고 닫을 때가 잦으므로), 미안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국제지역원이 허용한 것이었으니까요.
이제 비흡연자 건강에도 좋고, 제 건강에도 좋은 새로운 방침을 도입했으니, 저로서는 제 방에서 담배를 피우지 못해도 전혀 불만이 없습니다. 오히려 환영합니다. 차제에 담배를 끊으면 더 좋을 것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담배를 줄일 좋은 기회이고, 담배를 줄이지 못하더라도, 담배를 피우기 위해서 4층과 1층을 오르내리면 가벼운 운동이라도 될 것입니다.
물론 흡연자는,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 내 정신 건강에 큰 문제가 생긴다. 그것도 화장실이나 실내에서 꼭 피워야 내가 돌지 않는다.”라고 주장할지도 모르겠는데, 저에게는 별로 설득력이 없습니다. 내가 도는 것이 중요한 만큼 남이 도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것이 자유주의에서 규범이 생기고 규제가 생기는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 주장은 “간접흡연이 건강에 좋지 않다.”라는 연구결과를 인정하는 가정에서 펼쳐졌습니다. 그 전제가 틀렸으면 다른 주장도 가능할 것입니다.)
[글 7] 밤샘자 (흡연자)
저는 언제나 담배를 끊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름대로 담배를 즐긴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흡연 혹은 금연 문제에 대한 제 생각을 말씀드리고 싶군요.
1. 제가 본 바로는 공항청사 입구에서 바로 들어간 곳, 그러니까 각종 절차를 하기 이전의 장소 바로 그곳에도 흡연실은 있었다고 기억하는데요? 물론 그곳은 조금 나가기만 하면 바로 밖인데도 말이죠. 제 기억이 틀린 건가요?
2. 만약 지금 3층 화장실이 흡연실이라고 생각하면, 제 판단으론 창문 위에 달린 환풍기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보는데요. 그리고 거기서 피우는 담배연기가 그 밖에서 지나가는 비흡연자의 건강을 해칠 정도로 ‘많이’ 나온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3. 24시간 개방이 이뤄지는 지금, 밤새는 사람, 혹은 최소 3, 4시까지 버티다 자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12가 넘으면 대개 문은 쇠사슬로 동여매어 잠급니다. 이럴 때 담배를 피우고 싶으면 어떻게 합니까? 쇠사슬을 푼 다음에 현관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다시 돌아와야 하기에는 너무 번거로운 것 같습니다...
4. 마지막으로 제가 우려하는 것은, 이른바 ‘모니터링’ 문제입니다. 야심한 시각에는 말할 것도 없지만, 어떻게 전관 금연체제가 집행 가능할지 의문입니다.
물론 금연이 선포되고 하기로 했으면 지키는 것이 기본이라는 것을 부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담배와 같이 개인의 정서적 심리적 기호가 강하게 작용하는 사안은, ‘선포한 규칙’에 대한 반응과 수용 정도는 다양할 수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흡연 문제가 일상에서 민주주의와 권리문제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저는, 흡연 문제를 두고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소송을 제기하고, 신문에 대문짝만 하게 보도하고, 논리적 공방을 벌이는 것이 무슨 대단한 민주주의와 관련된 것처럼 이야기하는 미국적 사회분위기가 대단히 마음에 안 듭니다.)
단지 정서와 기호, 혹은 예의 문제라고 저는 느낍니다. 하지만, 시대도 변하고 사회도 변했고, 비흡연자들 건강도 당연히 생각해야겠으니, 정서, 기호 혹은 예의에 관련된 이 문제를 되도록 합리적으로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방법은 흡연실 설치라고 생각합니다.
[글 8: 필자] Re: 밤샘자
> 1. 공항
그것도 맞습니다. 그 경우에는 흡연자의 편의를 도모했다고 볼 수 있겠지요. 그런데 시카고 오헤어 공항은 아예 어떤 곳에서도 담배를 피울 수 없도록 하지요. 제가 있었던 미시간 주립대에서는 건물에서 일정 거리 이상 떨어져야 실외 흡연도 인정하죠. 왜냐하면, 밖에서 피운 담배 연기가 안으로 들어올 수 있으니까요. 제가 든 것은 하나의 예일 뿐입니다. 어떤 곳에서는 수업 시간 중에도 담배를 피우겠죠. 따라서 움직이는 거리와 흡연의 인정은 일반화시키기 어려운 것이 객관적 판단일 것입니다. 공항 국제선은 그런 합리적 설명(rationale)을 인정할 수 있는데, 국제지역원은 그런 설명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의견이었죠.
> 2. 흡연실 환풍시설
그것은 보는 관점에 따라서 다를 것입니다. 어떤 이는 담배 냄새만 맡아도 머리가 아프다고 호소할 것입니다. 어떤 이는 그 정도 냄새는 괜찮다고 이야기하겠죠. 일반적으로 약간의 연기는 환풍시설을 설치해도 새어 나온다고 보면, 그것이 간접흡연을 일으킬 수 있으면, 문제가 된다고 생각해요. 제도는 완벽할 수 없을 것입니다. 흡연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흡연실을 만드는 방향으로 “민주주의적”으로 의견을 모아서 건의하시기 바랍니다. 한 사람 의견만으로는 안됩니다.
> 3. 24시간 개방
지문인식기 공사를 곧 시작합니다. 아마 금연 건물이 되기 전에 그 쇠사슬은 풀릴 것입니다.
> 4. 이른바 ‘모니터링’ 문제
저는 완벽한 모니터링은 불가능해도 어느 정도는 가능하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서, 누가 실내에서 담배를 피웠다고 가정하죠. 비흡연자가 지나가면서 본다면 지적할 수도 있고, 익명으로 게시판에 글을 올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담배꽁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건물 밖에 흡연 테이블과 재떨이를 비치하려는 것입니다. 그래도 계속 아무 곳에나 버리면, 그것은 금연 건물 지정과는 다른, 흡연자 교양 문제가 되겠죠.
> 3층 정수기 옆도 담배 피우기 ‘좋은’ 장소
위에 언급했습니다. 모니텅링이 잘되지 않는다고 합시다. 그것이 실내 금연을 규정하지 못할 타당한 사유가 될까요? 금연으로 규정할 때와 하지 않을 때, 그런 식으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의 숫자는 차이가 없을까요? 모니터링이 잘되지 않으면, 잘 되는 식으로 제도를 만들 수는 없을까요?
> 저는 무례한 말을 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여론을 한번 모아보십시오. 그러면 다시 교수회의에서 논의할 수 있습니다. 제도는 항상 변할 가능성을 갖고 있답니다. 의견 감사합니다.
[글 9: 필자] 금연 규정 시행 시점
방금 전자우편을 확인해보니 오해가 풀렸군요. 금연 규정은 옥외에 파라솔, 테이블, 재떨이가 갖춰지는 시점에 발효합니다. 따라서 그때까지 지금 현행대로 하시면 되겠습니다. (저에게 반론을 제시하신 분은 그 물건들을 가능하면 비치하지 않도록 비시고, 혐연자분들은 가능한 한 빨리 비치하도록 비실 것 같은데... 저요? 저는 그냥 얼마나 빨리 비치되는지 보려고 합니다.)
[글 10: 필자] 오늘부터 전관 금연입니다.
실외 흡연구역이 생겼으니 오늘부터 전관 금연입니다. 불만이 있는 흡연자들께서는 자신의 권리를 확보하려는 노력을 보이시길 권고합니다. //
[토론 소감] 갈등은 소통으로 풀 수 있다는 교훈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사회 갈등은 정보 전달이 잘못된다든지, 상대방 진의를 오해한다든지, 사실 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등, 소통으로 해결할 수 있는 여지를 충분히 갖고 있다. 필자를 비롯한 토론 참여자들이 더 정확한 정보를 얻어서 갈등 상황이 해결된 사례이다. 현 정부가 참조할 만하다는 것이 필자의 오래된 생각이다.
당시 필자는 국제협력전공 교수이면서 전산실/도서관 담당 교수였는데, 학생들 토론에 참여하여 학교의 뜻을 전달하고, 학생들을 설득하는 역할을 하였다. 당시 국제지역원은 설립된 지 2년밖에 되지 않았고, 학사 프로그램 개발, 건물 신축 등, 대학원을 안정화하려고 노력하던 시기였다. 그 와중에 학생들 민원 사안이 가끔 발생했는데, 이 사례도 그중 하나이다. 소통을 통해서 학교 방침을 명확하게 전달하고, 학생들을 설득하여 갈등을 해결할 수 있었다.
필자는 흡연자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서, 자유주의에서 자유가 서로 부딪힐 때 규범이 생기는 점을 강조하고, 흡연자들이 전관 금연 규범을 다시 바꾸려면 민주적 절차를 밟을 것을 권고하고 있다. 전관 금연은 실외에 파라솔을 비치하여 흡연자 편의를 살피는 설비가 마련되어 예정대로 시행되었다. //
(출처: 1999년 서울대 국제지역원 홈페이지 게시판, 당시 주소 http://gias.snu.ac.kr)
[글 0] 문제 제기
“금연”, 결정된 것 아니었습니까? 얼마 전에 학생회에서 투표했었던 것 같은데... 아직도 휴게실에서 남들 밥 먹는 거 뻔히 보면서, 약간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담배를 꼭 피워야 되겠습니까? 자기가 피우는 담배 연기를 다른 사람이 맡는 거... 애연가들이 생각하기에는 별거 아닐지 모르지만, 금연족들은 왜 왜 담배를 안 피우겠습니까? 몸에 나쁘니까 일부러 애써 안 하는 거죠... 몸에 나쁜 거 이 기회를 빌려 휴게실에서만이라도, 또는 밖에 나가서 피우는 거 귀찮아서라도 좀 줄여보시죠.
담배가 싫어요. 우리 아빠도 가족들 생각해서 끊었는데 그 연기를 내가 학교에 공부하러 와서 맡아야 되겠습니까? 흡연자들은 모르겠지만, “정말 정말 머리 아프게, 피우는 사람의 인격이 순간 의심될 정도로 싫다고요~~!!!”
[글 1] 금연 문제에 대해서 (학생회)
사실 많은 반발이 있어도 실내 금연을 강제하려고 했습니다. 문제는 학생회에서 결정하는 것은 별 구속력이 없더군요. 교수 회의에서 이 결의 사항을 참고, 채택하여 공식적으로 공포해야 효력이 발생한답니다. 어쨌든 흡연자들을 야만인, 에티켓 없는 괴물 취급하지 마시기를 바라면서 공식 견해로 선생님들께 공포하시기를 부탁하겠습니다.
새 건물에는 흡연실이 만들어질 것을 확신하고, 야외에도 아름다운 휴게실이 생길 것을 믿습니다. 어쨌든, 앞으로는 야외에서 흡연하시기를 부탁하는 바입니다. 감사합니다.
[글 2: 필자] 금연 문제
국제지역원(신관 및 구관 모두)을 금연 건물로 하기로 하였습니다. 금연 규정은 국제지역원 옥외에 흡연자 편의를 위하여 파라솔(우천시 고려), 피크닉 테이블, 재떨이 등을 비치하는 시점부터 적용하기로 했습니다.
이 결정에 따라서 조만간 저도 제 연구실에서 담배를 피우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아주 잘 된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건강을 위해서...
[글 3] 화장실에서도 피우지 맙시다.
휴게실에서 못 피우게 하면 화장실에서 피는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하지만, 이것도 불쾌하기는 휴게실 못지않습니다. 오히려 연기 농도는 휴게실보다 훨씬 높지요. 그러니 해악은 더 큽니다. 화장실에서도 피우지 맙시다.
[글 4: 필자] Re: 화장실에서도 피우지 맙시다.
실내 흡연은 어떤 곳에서도 허용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당연히 화장실도 금연구역입니다.
[글 5] 왜 이러죠? (흡연자 시각)
이런 예외없는 규칙 적용은 분명히 어떤 부작용을 가져올 것입니다. 건물 내 흡연공간 설치가 더 중요할 듯싶습니다. 흡연자들께서는 아시겠지만, 수업 중간마다 한 대가 얼마나 피로회복에 좋은지 아실 것입니다. 그런데 쉬는 시간을 이용해서 바깥 파라솔까지 가는 것은 무리가 있을 듯싶습니다. 4개의 화장실 중 하나라도, 3층이 가장 무난할 듯, 흡연 가능구역으로 지정하는 것이 어떨까요... 그리고 안 선생님 방에서 교수님 흡연은 가능하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과연 이런 조치가 어떻게 옮겨질지 의심스럽습니다. 휴게실에서 담배피우는 사람들의 죄책감을 가중시켜 오히려 나가서 담배를 더 피우게 하는 부작용도 생기지 않을까요? 우리 어느 정도 타협합시다. 전관 금연은 지나치게 이상적인 발언입니다. 흡연구역은 별도로 지정되어야 합니다.
[글 6: 필자] Re: 왜 이러죠?
구체적인 사례로 한번 생각해봅시다. 공항에 가면 건물 안에 흡연실이 있습니다. 저는 그 이유를 건물 밖으로 나가서 흡연하기 곤란하기 때문에 그런 흡연 구역을 지정한 것으로 해석합니다. 국제선 출국장에서는 한번 들어가면 밖으로 나오기가 거의 불가능하지 않습니까?
우리 건물은 건물 밖으로 나가는 것이 그렇게 힘들지 않습니다. 교수회의를 할 때, 흡연자 편의를 위해서 환풍시설이 있는 흡연실을 설치하자는 제안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아주 값비싼 최고성능 환풍시설이 아닌 이상, 담배 연기는 새나올 것입니다. 그 이유 때문에 전관 금연으로 의견이 모였습니다. 흡연자인 저도 동의했습니다. 국제지역원은 건물 밖으로 나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 30초도 걸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 방을 한번 생각해봅시다. 저는 지금까지는 금연 방침이 없었기 때문에 마음대로 방안에서 담배를 피웠습니다. 그 담배 연기가 복도로 가끔 새나올 때(방문을 열고 닫을 때가 잦으므로), 미안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국제지역원이 허용한 것이었으니까요.
이제 비흡연자 건강에도 좋고, 제 건강에도 좋은 새로운 방침을 도입했으니, 저로서는 제 방에서 담배를 피우지 못해도 전혀 불만이 없습니다. 오히려 환영합니다. 차제에 담배를 끊으면 더 좋을 것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담배를 줄일 좋은 기회이고, 담배를 줄이지 못하더라도, 담배를 피우기 위해서 4층과 1층을 오르내리면 가벼운 운동이라도 될 것입니다.
물론 흡연자는,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 내 정신 건강에 큰 문제가 생긴다. 그것도 화장실이나 실내에서 꼭 피워야 내가 돌지 않는다.”라고 주장할지도 모르겠는데, 저에게는 별로 설득력이 없습니다. 내가 도는 것이 중요한 만큼 남이 도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것이 자유주의에서 규범이 생기고 규제가 생기는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 주장은 “간접흡연이 건강에 좋지 않다.”라는 연구결과를 인정하는 가정에서 펼쳐졌습니다. 그 전제가 틀렸으면 다른 주장도 가능할 것입니다.)
[글 7] 밤샘자 (흡연자)
저는 언제나 담배를 끊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름대로 담배를 즐긴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흡연 혹은 금연 문제에 대한 제 생각을 말씀드리고 싶군요.
1. 제가 본 바로는 공항청사 입구에서 바로 들어간 곳, 그러니까 각종 절차를 하기 이전의 장소 바로 그곳에도 흡연실은 있었다고 기억하는데요? 물론 그곳은 조금 나가기만 하면 바로 밖인데도 말이죠. 제 기억이 틀린 건가요?
2. 만약 지금 3층 화장실이 흡연실이라고 생각하면, 제 판단으론 창문 위에 달린 환풍기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보는데요. 그리고 거기서 피우는 담배연기가 그 밖에서 지나가는 비흡연자의 건강을 해칠 정도로 ‘많이’ 나온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3. 24시간 개방이 이뤄지는 지금, 밤새는 사람, 혹은 최소 3, 4시까지 버티다 자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12가 넘으면 대개 문은 쇠사슬로 동여매어 잠급니다. 이럴 때 담배를 피우고 싶으면 어떻게 합니까? 쇠사슬을 푼 다음에 현관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다시 돌아와야 하기에는 너무 번거로운 것 같습니다...
4. 마지막으로 제가 우려하는 것은, 이른바 ‘모니터링’ 문제입니다. 야심한 시각에는 말할 것도 없지만, 어떻게 전관 금연체제가 집행 가능할지 의문입니다.
물론 금연이 선포되고 하기로 했으면 지키는 것이 기본이라는 것을 부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담배와 같이 개인의 정서적 심리적 기호가 강하게 작용하는 사안은, ‘선포한 규칙’에 대한 반응과 수용 정도는 다양할 수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흡연 문제가 일상에서 민주주의와 권리문제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저는, 흡연 문제를 두고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소송을 제기하고, 신문에 대문짝만 하게 보도하고, 논리적 공방을 벌이는 것이 무슨 대단한 민주주의와 관련된 것처럼 이야기하는 미국적 사회분위기가 대단히 마음에 안 듭니다.)
단지 정서와 기호, 혹은 예의 문제라고 저는 느낍니다. 하지만, 시대도 변하고 사회도 변했고, 비흡연자들 건강도 당연히 생각해야겠으니, 정서, 기호 혹은 예의에 관련된 이 문제를 되도록 합리적으로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방법은 흡연실 설치라고 생각합니다.
[글 8: 필자] Re: 밤샘자
> 1. 공항
그것도 맞습니다. 그 경우에는 흡연자의 편의를 도모했다고 볼 수 있겠지요. 그런데 시카고 오헤어 공항은 아예 어떤 곳에서도 담배를 피울 수 없도록 하지요. 제가 있었던 미시간 주립대에서는 건물에서 일정 거리 이상 떨어져야 실외 흡연도 인정하죠. 왜냐하면, 밖에서 피운 담배 연기가 안으로 들어올 수 있으니까요. 제가 든 것은 하나의 예일 뿐입니다. 어떤 곳에서는 수업 시간 중에도 담배를 피우겠죠. 따라서 움직이는 거리와 흡연의 인정은 일반화시키기 어려운 것이 객관적 판단일 것입니다. 공항 국제선은 그런 합리적 설명(rationale)을 인정할 수 있는데, 국제지역원은 그런 설명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의견이었죠.
> 2. 흡연실 환풍시설
그것은 보는 관점에 따라서 다를 것입니다. 어떤 이는 담배 냄새만 맡아도 머리가 아프다고 호소할 것입니다. 어떤 이는 그 정도 냄새는 괜찮다고 이야기하겠죠. 일반적으로 약간의 연기는 환풍시설을 설치해도 새어 나온다고 보면, 그것이 간접흡연을 일으킬 수 있으면, 문제가 된다고 생각해요. 제도는 완벽할 수 없을 것입니다. 흡연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흡연실을 만드는 방향으로 “민주주의적”으로 의견을 모아서 건의하시기 바랍니다. 한 사람 의견만으로는 안됩니다.
> 3. 24시간 개방
지문인식기 공사를 곧 시작합니다. 아마 금연 건물이 되기 전에 그 쇠사슬은 풀릴 것입니다.
> 4. 이른바 ‘모니터링’ 문제
저는 완벽한 모니터링은 불가능해도 어느 정도는 가능하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서, 누가 실내에서 담배를 피웠다고 가정하죠. 비흡연자가 지나가면서 본다면 지적할 수도 있고, 익명으로 게시판에 글을 올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담배꽁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건물 밖에 흡연 테이블과 재떨이를 비치하려는 것입니다. 그래도 계속 아무 곳에나 버리면, 그것은 금연 건물 지정과는 다른, 흡연자 교양 문제가 되겠죠.
> 3층 정수기 옆도 담배 피우기 ‘좋은’ 장소
위에 언급했습니다. 모니텅링이 잘되지 않는다고 합시다. 그것이 실내 금연을 규정하지 못할 타당한 사유가 될까요? 금연으로 규정할 때와 하지 않을 때, 그런 식으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의 숫자는 차이가 없을까요? 모니터링이 잘되지 않으면, 잘 되는 식으로 제도를 만들 수는 없을까요?
> 저는 무례한 말을 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여론을 한번 모아보십시오. 그러면 다시 교수회의에서 논의할 수 있습니다. 제도는 항상 변할 가능성을 갖고 있답니다. 의견 감사합니다.
[글 9: 필자] 금연 규정 시행 시점
방금 전자우편을 확인해보니 오해가 풀렸군요. 금연 규정은 옥외에 파라솔, 테이블, 재떨이가 갖춰지는 시점에 발효합니다. 따라서 그때까지 지금 현행대로 하시면 되겠습니다. (저에게 반론을 제시하신 분은 그 물건들을 가능하면 비치하지 않도록 비시고, 혐연자분들은 가능한 한 빨리 비치하도록 비실 것 같은데... 저요? 저는 그냥 얼마나 빨리 비치되는지 보려고 합니다.)
[글 10: 필자] 오늘부터 전관 금연입니다.
실외 흡연구역이 생겼으니 오늘부터 전관 금연입니다. 불만이 있는 흡연자들께서는 자신의 권리를 확보하려는 노력을 보이시길 권고합니다. //
[토론 소감] 갈등은 소통으로 풀 수 있다는 교훈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사회 갈등은 정보 전달이 잘못된다든지, 상대방 진의를 오해한다든지, 사실 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등, 소통으로 해결할 수 있는 여지를 충분히 갖고 있다. 필자를 비롯한 토론 참여자들이 더 정확한 정보를 얻어서 갈등 상황이 해결된 사례이다. 현 정부가 참조할 만하다는 것이 필자의 오래된 생각이다.
당시 필자는 국제협력전공 교수이면서 전산실/도서관 담당 교수였는데, 학생들 토론에 참여하여 학교의 뜻을 전달하고, 학생들을 설득하는 역할을 하였다. 당시 국제지역원은 설립된 지 2년밖에 되지 않았고, 학사 프로그램 개발, 건물 신축 등, 대학원을 안정화하려고 노력하던 시기였다. 그 와중에 학생들 민원 사안이 가끔 발생했는데, 이 사례도 그중 하나이다. 소통을 통해서 학교 방침을 명확하게 전달하고, 학생들을 설득하여 갈등을 해결할 수 있었다.
2009년 12월 10일 목요일
[단상] 교직에 있는 어느 후배의 편지
[작성자]
안병길晴海
//
오후 1:45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08/12/22)
연말이면 이런저런 모임이 많습니다. 저도 우리나라에 있으면 여러 송년 모임에 바쁜 밤을 보내고 있을 텐데 이곳은 그런 모임이 별로 없어서 조용히 한 해를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파면/해임된 교사들에 대한 언론보도를 접하면서 요즘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은 상태인데, 중고등 교직에 있는 어떤 후배에게서 두 통의 편지를 지난주에 받았습니다. 송년 모임의 한 참석자가 교사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을 얘기했던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우리 교육의 불안한 모습을 보여주는 글입니다. 생각해볼 만한 주제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포스팅을 허락해준 그 후배에게 감사하면서 시작합니다.
<시작>
어딜가나 자녀 교육 문제는 가장 큰 화두이고,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이 왜 이리도 힘든지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되었는지 답답하지요.
그런데 교육문제를 이야기 하는 도중에 교직에 있지 않는 어떤 근엄한 후배가 갑자기 뜬금없이 "강남에 선생들이 많이 몰려 사는 값싼 동네"라는 말을 꺼내면서, "저기 일원동 저층 아파트 값싼 동네에 선생들이 많이 몰려 산다", 또 "전세가 아주 싸다"고 하면서, 연거푸 반복해서 "선생들이 그 값싼 동네에 많이 산다"고 강조 하더군요. 그 어조와 표정은 농담이 아니었습니다.
선생인 제 입장에서 선생님도 아닌 선생들이 무더기로 비하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교육문제 얘기하다, 갑자기 값싼 동네에 몰려사는 선생이라니요. 그 의도가 무엇인지, 아마 무의식속에 잠재되어 있던 교사에 대한 인식에 그런 발언을 낳았나 봅니다.
집값이 싸고 안 싸고가 문제가 아닙니다. 이런 발언은 일반인이 교사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갖고 있느냐를 단적으로 나타내주는 예이지요. 낯선 모임에 가면 '선생들' 욕하는 소리에 얼굴을 들기가 힘듭니다.
마치 돈없는 교사가 강남 한 구석에 비집고 전세들어 와 부유층에 끼어 살려고 발버둥 치는 매우 모멸적이고 경멸적인 언사로 들렸습니다. 같은 말이라도 '아'와 '어'가 다르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지요.
그 동네에 교사만 사는 것도 아니고, 택시 운전사, 교수, 상점주인 등,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교사들은 서울 어디에나 골고루 살고 있습니다. 상계동 목동 송파구... 부자인 교사도 있고 가난한 선생도 많습니다.
우리 현실은 경기가 좋을 때는 교사는 관심에도 없다가, 경기가 어려울 때는 교사 집단은 철밥통이라고 매도되며 숱한 뭇매를 맞습니다. 사실 제가 봐도 한심한 교사 많구요, 교직 사회에는 큰 수술대에 올라야 할 부분이 상당합니다. 어떤 획기적인 혁명이 일어나서 게으르고 실력없고 열정없는 교사는 물러나고, 아이들도 사람간의 예의나 배려, 기본적인 인성을 갖추고, 밤늦게까지 학원에 가지 않고, 선행학습이란 것을 없애고, 학교는 진정 배움의 장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교사는 돈이 없어 값싼 집에 사니까 결국 힘이 없습니다. 요즘은 아무나 교사에게 대듭니다. 특히 가정에서 교사 비하 발언에 대해 많이 접해 본 아이들일수록 학교에 와서 안하무인으로 교실을 뒤집어 놓습니다. 그런 학생들은 자라서 역시 그 잘난 부모들까지 무시하지요.
제가 18년 전에, 프라이드(이건 자동차입니다)를 몰고 교정을 빠져 나오는데 한 학생이 "무슨 돈으로 차 샀어(요)?" 합니다. 얼마 전 조선일보에도 "학부모 노릇하기 힘들다"는 교사 고발 기사가 있었습니다. 참고로 저는 아직도 (그리고 앞으로도) 촌지 한 번도 받아본 적 없습니다.
제가 좋아하고 즐겨 보는 미국 드라마가 있어요. - "The West Wing"
백악관의 west wing 에서 근무하는, 대통령을 중심으로 그 보좌관들이 등장하는 정치 드라마입니다. 대부분 하바드, 예일, 버클리 법대 등등을 졸업한 미국 최고의 엘리트들이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던 대통령과 국내는 물론 세계 정치를 논하며 매일 매일 숨가쁘게 살아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 속에 아주 왜소하고 늙고 주름이 조글조글한 한 할머니가 대통령의 비서로 있습니다. 그 할머니는 두 아들을 군대에 보낸 후 전쟁에서 모두 잃고, 남편과도 사별하고, 평생을 중고차만 몰고 다닌, 경제적으로 그리 넉넉지 않은 전직 교사입니다. 대통령의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지요. 대통령에게는 누나 같은 존재로 사소한 부분까지 배려해 주고 챙겨주지만, 때로 대통령이 괜한 고집을 부릴 때는 아무도 안 보는 데서 대통령을 호되게 야단도 치는 이 할머니가 어느날 드디어 평생 처음으로 새 자동차를 구입하게 됩니다. 다른 직원들 모두가 자동차를 싸게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왜 비싸게 샀느냐며 도와주겠다고 해도 이 꼿꼿한 할머니는 정당한 값을 주었을 뿐이라며 거부합니다.
그 새 차를 운전하고 출근하는 첫 날 아침, 이 할머니는 어느 과속 운전자의 부주의로 사고를 당하고 그만 세상을 뜨고 맙니다. 교회에서 장례식을 마친 후 대통령은 모든 사람을 교회 밖으로 나가게 한 후, 선생님에게 새 자동차 한 번을 타보는 호사로움 조차 허락하지 않았던 무자비한 하나님을 향해 욕설을 퍼붓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아버지가 교장이었던 그 사립고등학교 시절에 반항의 표시로 했던 것 처럼, 담배를 피우고는 그 꽁초를 교회 바닥에 버려 짓밟습니다. 그 후로도 대통령은 종종 선생님의 빈 자리에 쓸쓸해 합니다.
물론 드라마이긴 하지만 여기에는 "나에게는 스승이 없다"고 울부짖고 전국의 모든 교사들을 학생들을 볼모삼아 학부모로부터 촌지나 울궈먹는 사기꾼 집단으로 매도하여 교사의 권위를 짓밟아 뭉개고 우리나라 교육문제의 원인을 나약한 교사의 책임으로만 전가하고, 그 후 교실을 봉숭아 학당보다 더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은 우리 나라 교육부 장관같이 똑똑하신 분은 없습니다. 이 드라마가 추구하는 가치가 바로 이 작은 선생님의 일화에 그려져 있어서 저는 좋습니다.
좋은 학교 가려고 대부분의 사람들 바둥거리지만, 그 목적이 자기보다 못난 사람을 비하하고, 반대로 자기 보다 공부 열심히하고 잘 살고 많이 배운 사람을 어떻게든지 끌어 내리려 하는 사회 분위기에서는 그 궁극의 결과가 어찌될지 자못 무섭습니다.
저는 우리의 아이들이 제대로된 성품을 갖춘 인간으로 자라기 위해서는, 그런 도덕 문제를 시험지로 풀 것이 아니라 우리 어른들이 일상에서 몸으로 실천하며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먼저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야 겠지요.
다가오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고 행복하시기를 빕니다.
<끝>
<시작>
어딜가나 자녀 교육 문제는 가장 큰 화두이고,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이 왜 이리도 힘든지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되었는지 답답하지요.
그런데 교육문제를 이야기 하는 도중에 교직에 있지 않는 어떤 근엄한 후배가 갑자기 뜬금없이 "강남에 선생들이 많이 몰려 사는 값싼 동네"라는 말을 꺼내면서, "저기 일원동 저층 아파트 값싼 동네에 선생들이 많이 몰려 산다", 또 "전세가 아주 싸다"고 하면서, 연거푸 반복해서 "선생들이 그 값싼 동네에 많이 산다"고 강조 하더군요. 그 어조와 표정은 농담이 아니었습니다.
선생인 제 입장에서 선생님도 아닌 선생들이 무더기로 비하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교육문제 얘기하다, 갑자기 값싼 동네에 몰려사는 선생이라니요. 그 의도가 무엇인지, 아마 무의식속에 잠재되어 있던 교사에 대한 인식에 그런 발언을 낳았나 봅니다.
집값이 싸고 안 싸고가 문제가 아닙니다. 이런 발언은 일반인이 교사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갖고 있느냐를 단적으로 나타내주는 예이지요. 낯선 모임에 가면 '선생들' 욕하는 소리에 얼굴을 들기가 힘듭니다.
마치 돈없는 교사가 강남 한 구석에 비집고 전세들어 와 부유층에 끼어 살려고 발버둥 치는 매우 모멸적이고 경멸적인 언사로 들렸습니다. 같은 말이라도 '아'와 '어'가 다르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지요.
그 동네에 교사만 사는 것도 아니고, 택시 운전사, 교수, 상점주인 등,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교사들은 서울 어디에나 골고루 살고 있습니다. 상계동 목동 송파구... 부자인 교사도 있고 가난한 선생도 많습니다.
우리 현실은 경기가 좋을 때는 교사는 관심에도 없다가, 경기가 어려울 때는 교사 집단은 철밥통이라고 매도되며 숱한 뭇매를 맞습니다. 사실 제가 봐도 한심한 교사 많구요, 교직 사회에는 큰 수술대에 올라야 할 부분이 상당합니다. 어떤 획기적인 혁명이 일어나서 게으르고 실력없고 열정없는 교사는 물러나고, 아이들도 사람간의 예의나 배려, 기본적인 인성을 갖추고, 밤늦게까지 학원에 가지 않고, 선행학습이란 것을 없애고, 학교는 진정 배움의 장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교사는 돈이 없어 값싼 집에 사니까 결국 힘이 없습니다. 요즘은 아무나 교사에게 대듭니다. 특히 가정에서 교사 비하 발언에 대해 많이 접해 본 아이들일수록 학교에 와서 안하무인으로 교실을 뒤집어 놓습니다. 그런 학생들은 자라서 역시 그 잘난 부모들까지 무시하지요.
제가 18년 전에, 프라이드(이건 자동차입니다)를 몰고 교정을 빠져 나오는데 한 학생이 "무슨 돈으로 차 샀어(요)?" 합니다. 얼마 전 조선일보에도 "학부모 노릇하기 힘들다"는 교사 고발 기사가 있었습니다. 참고로 저는 아직도 (그리고 앞으로도) 촌지 한 번도 받아본 적 없습니다.
제가 좋아하고 즐겨 보는 미국 드라마가 있어요. - "The West Wing"
백악관의 west wing 에서 근무하는, 대통령을 중심으로 그 보좌관들이 등장하는 정치 드라마입니다. 대부분 하바드, 예일, 버클리 법대 등등을 졸업한 미국 최고의 엘리트들이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던 대통령과 국내는 물론 세계 정치를 논하며 매일 매일 숨가쁘게 살아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 속에 아주 왜소하고 늙고 주름이 조글조글한 한 할머니가 대통령의 비서로 있습니다. 그 할머니는 두 아들을 군대에 보낸 후 전쟁에서 모두 잃고, 남편과도 사별하고, 평생을 중고차만 몰고 다닌, 경제적으로 그리 넉넉지 않은 전직 교사입니다. 대통령의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지요. 대통령에게는 누나 같은 존재로 사소한 부분까지 배려해 주고 챙겨주지만, 때로 대통령이 괜한 고집을 부릴 때는 아무도 안 보는 데서 대통령을 호되게 야단도 치는 이 할머니가 어느날 드디어 평생 처음으로 새 자동차를 구입하게 됩니다. 다른 직원들 모두가 자동차를 싸게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왜 비싸게 샀느냐며 도와주겠다고 해도 이 꼿꼿한 할머니는 정당한 값을 주었을 뿐이라며 거부합니다.
그 새 차를 운전하고 출근하는 첫 날 아침, 이 할머니는 어느 과속 운전자의 부주의로 사고를 당하고 그만 세상을 뜨고 맙니다. 교회에서 장례식을 마친 후 대통령은 모든 사람을 교회 밖으로 나가게 한 후, 선생님에게 새 자동차 한 번을 타보는 호사로움 조차 허락하지 않았던 무자비한 하나님을 향해 욕설을 퍼붓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아버지가 교장이었던 그 사립고등학교 시절에 반항의 표시로 했던 것 처럼, 담배를 피우고는 그 꽁초를 교회 바닥에 버려 짓밟습니다. 그 후로도 대통령은 종종 선생님의 빈 자리에 쓸쓸해 합니다.
물론 드라마이긴 하지만 여기에는 "나에게는 스승이 없다"고 울부짖고 전국의 모든 교사들을 학생들을 볼모삼아 학부모로부터 촌지나 울궈먹는 사기꾼 집단으로 매도하여 교사의 권위를 짓밟아 뭉개고 우리나라 교육문제의 원인을 나약한 교사의 책임으로만 전가하고, 그 후 교실을 봉숭아 학당보다 더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은 우리 나라 교육부 장관같이 똑똑하신 분은 없습니다. 이 드라마가 추구하는 가치가 바로 이 작은 선생님의 일화에 그려져 있어서 저는 좋습니다.
좋은 학교 가려고 대부분의 사람들 바둥거리지만, 그 목적이 자기보다 못난 사람을 비하하고, 반대로 자기 보다 공부 열심히하고 잘 살고 많이 배운 사람을 어떻게든지 끌어 내리려 하는 사회 분위기에서는 그 궁극의 결과가 어찌될지 자못 무섭습니다.
저는 우리의 아이들이 제대로된 성품을 갖춘 인간으로 자라기 위해서는, 그런 도덕 문제를 시험지로 풀 것이 아니라 우리 어른들이 일상에서 몸으로 실천하며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먼저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야 겠지요.
다가오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고 행복하시기를 빕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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