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자이언츠 고 최동원 선수의 명복을 빕니다.
2009년 9월 30일 수요일
[잡담] 부산 야구의 추억
[작성자]
안병길晴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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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2:12
롯데가 가을 야구 첫 판에서 이겼군요. 저도 고향이 부산이라서 기분이 나쁘지는 않습니다. ^^ 부산 갈매기들에게 축하 말씀을 드립니다.
어린 시절부터 야구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였습니다.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서 야구 경기도 많이 했죠. 바닷가에 나가면 푹신푹신한 모래가 지천으로 널려 있어서 야구를 할 수 있는 천혜의 환경이었습니다. 문제는 야구 글러브였죠. 제가 동네 친구들과 야구를 했을 때가 1970년대 초반이었으니 당시 경제를 참작하면 야구 글러브가 귀했을 것은 쉽게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형들을 많이 둔 저는 다행히 집에 글러브가 몇 개 있었습니다. 야구를 할 때 동네의 모든 글러브를 모아도 모자라서 신문지로 글러브를 만들어 사용했던 기억이 납니다.
프로가 출범하기 전 부산은 고등학교 야구에 열광하는 도시였습니다. 부산을 球都(구도)라고 하는데, 그것은 아마도 부산이 일본과 가까워서 상대적으로 야구를 일찍 받아들인 영향이 있었을 것입니다. 지금은 일반고로 바뀐 부산상고를 포함하여 경남상고, 경남고, 부산고가 각축을 벌이면서 전국대회에서도 좋은 성적을 낼 때가 잦았습니다. 부산공고도 한때 야구팀이 있었지만 오래 유지하지는 못했던 것으로 압니다.
최동원이 고등학생일 때 경남고 투수로 큰 활약을 보였죠. 연세대로 진학했고, 나중에 롯데에 입단하여 1984년 코리언 시리즈에서 엄청난 일을 벌였습니다. 롯데가 거둔 4승이 모두 최동원이 던진 것이었죠. 다섯 번 등판하여 4승, 그리고 마지막 7차전은 완봉승이었습니다. 단기 7차전에서 이런 기록이 나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봅니다. 더 오랫동안 선수 생활을 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웠습니다. 아래 관련 동영상을 올립니다.
1999년 플레이오프 7차전이 명승부였네요. 홈런을 친 호세에게 오물이 날아들어서 격분한 호세가 방망이를 관중석으로 던졌고, 퇴장당했습니다. 9회 삼성이 5-3으로 이기고 있었는데, 창용 불패 임창용이 던진 공을 밀어쳐서 임수혁이 동점 홈런을 쏘아 올렸습니다.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야구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였습니다.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서 야구 경기도 많이 했죠. 바닷가에 나가면 푹신푹신한 모래가 지천으로 널려 있어서 야구를 할 수 있는 천혜의 환경이었습니다. 문제는 야구 글러브였죠. 제가 동네 친구들과 야구를 했을 때가 1970년대 초반이었으니 당시 경제를 참작하면 야구 글러브가 귀했을 것은 쉽게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형들을 많이 둔 저는 다행히 집에 글러브가 몇 개 있었습니다. 야구를 할 때 동네의 모든 글러브를 모아도 모자라서 신문지로 글러브를 만들어 사용했던 기억이 납니다.
프로가 출범하기 전 부산은 고등학교 야구에 열광하는 도시였습니다. 부산을 球都(구도)라고 하는데, 그것은 아마도 부산이 일본과 가까워서 상대적으로 야구를 일찍 받아들인 영향이 있었을 것입니다. 지금은 일반고로 바뀐 부산상고를 포함하여 경남상고, 경남고, 부산고가 각축을 벌이면서 전국대회에서도 좋은 성적을 낼 때가 잦았습니다. 부산공고도 한때 야구팀이 있었지만 오래 유지하지는 못했던 것으로 압니다.
최동원이 고등학생일 때 경남고 투수로 큰 활약을 보였죠. 연세대로 진학했고, 나중에 롯데에 입단하여 1984년 코리언 시리즈에서 엄청난 일을 벌였습니다. 롯데가 거둔 4승이 모두 최동원이 던진 것이었죠. 다섯 번 등판하여 4승, 그리고 마지막 7차전은 완봉승이었습니다. 단기 7차전에서 이런 기록이 나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봅니다. 더 오랫동안 선수 생활을 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웠습니다. 아래 관련 동영상을 올립니다.
1999년 플레이오프 7차전이 명승부였네요. 홈런을 친 호세에게 오물이 날아들어서 격분한 호세가 방망이를 관중석으로 던졌고, 퇴장당했습니다. 9회 삼성이 5-3으로 이기고 있었는데, 창용 불패 임창용이 던진 공을 밀어쳐서 임수혁이 동점 홈런을 쏘아 올렸습니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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